이삿짐센터의 견적 달력에서 어떤 날 옆에는 ‘손 없는 날’이라는 작은 표시가 붙기도 합니다. 그 표시의 기준은 양력 달력 어디에도 없고 음력 날짜의 끝자리에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손 없는 날’ 항목은 이날을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 ‘손’이 없는 길일로 풀이합니다.
손이라는 귀신과 ‘손 없다’는 말
같은 박물관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손’ 항목은 손을 방위와 날을 따라다니면서 인간생활에 영향을 주는 귀신으로 정의합니다. ‘손 없는 날’ 항목은 이 귀신이 음력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 네 곳을 옮겨 다니며 사람의 일을 방해하고 해코지한다고 설명하고, 악귀나 악신이 돌아다니지 않아 해를 끼치지 않는 날을 손 없는 날이라 부른다고 적습니다. 반대편에는 ‘손 있는 날’이 놓입니다. 같은 ‘손 없는 날’ 항목에 따르면 손 있는 날에 집을 수리하거나 이사하거나 멀리 길을 떠나면 손실을 보거나 병이 나는 큰 해를 당한다고 믿었습니다. ‘손’ 항목은 손의 부정적 의미가 사람을 해치는 귀신의 모습으로 이어진 예로 손님신, 손각시, 손돌바람을 듭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의 손 없는 날 풀이도 같은 뜻입니다.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며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이 없는 날이고, 이날을 골라 이사를 하거나 중요한 행사를 치르거나 먼 길을 떠나면 해가 없다고 한다는 설명입니다. 견적 달력의 작은 표시는 해가 없다는 믿음을 표시 하나로 줄여 놓은 것입니다.
‘손’이라는 이름을 두고 갈리는 두 설
이름의 뿌리를 두고 민속대백과는 두 설을 함께 싣습니다.
손님을 줄여 부른 말이라는 설
‘손 없는 날’ 항목은 손이 ‘손님’을 줄여 부른 말이라고 적습니다. ‘손’ 항목도 이 설을 먼저 소개하며, 손님을 공경하고 접대하는 일의 두려움과 관련된다고 본다고 덧붙입니다. 손님은 천연두를 주관하는 신이기도 해서 홀대하면 벌을 내린다고 믿어 손님굿으로 대접했다는 설명도 실려 있습니다. 다만 항목은 손님의 의미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직접 밝힙니다.
팔괘의 손괘에서 왔다는 설
다른 설은 『주역』 팔괘의 손괘(☴)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입니다. 손괘는 바람과 출입을 상징합니다. 손은 방위 이름이기도 해서 ‘손’ 항목은 24방위의 하나인 남동쪽을 가리키는 말로도 설명합니다. 이 항목은 이쪽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하고, 바람이 농경 시대에 농사에 해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져 피해를 주는 부정적 의미로 민속에 자리 잡았다고 풀이합니다. 중국 술서에 나오는 태백살과도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두 설 가운데 이 글은 사전 항목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 손괘 쪽을 따릅니다.
끝자리 숫자가 방위를 정하는 셈
규칙은 음력 날짜의 끝자리만 봅니다. ‘손 없는 날’ 항목에 따르면 끝자리가 1이나 2인 날은 동쪽, 3이나 4인 날은 남쪽, 5나 6인 날은 서쪽, 7이나 8인 날은 북쪽에 손이 있습니다. 9와 0으로 끝나는 날에는 손이 하늘에 올라가 있어 어느 방위에도 없습니다. 열흘이 한 바퀴여서 항목은 손이 10일 간격으로 돌아다닌다고 적습니다. 그래서 11일과 12일은 다시 동쪽, 13일과 14일은 남쪽이 됩니다.
‘손’ 항목에는 이 셈이 쓰인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신라 때 박찬이라는 관리가 아버지 제사에 가다 도적을 만나 의복과 돈을 모두 빼앗기고 겨우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묘법 스님에게 사정을 말하자 스님은 어제가 3월 초이틀인데 동쪽으로 갔으니 손의 제재를 받은 것이라고 풀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초이틀이 동쪽이라는 위 배당과 그대로 맞습니다. ‘손’ 항목은 태세와 월건에 따라 방위를 옮겨 다니는 다른 살과 달리 손은 해나 달과 무관하다고도 적습니다. 해마다 달마다 새로 계산할 것 없이 음력 날짜 하나만 알면 된다는 뜻입니다.
‘손 없는 날’ 항목은 이 규칙을 두 겹으로 설명합니다. 어느 방위에도 손이 없는 날이 9와 0으로 끝나는 날이고, 그 밖의 날이라도 행사하려는 방향에 손이 없다면 그 방향에 대해서는 손 없는 날로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삿날이라면 지금 사는 곳을 기준으로 옮겨 갈 방향에 그날 손이 머무는지를 따지면 됩니다. 같은 박물관의 택일 항목도 음력 1·2일은 동, 3·4일은 남, 5·6일은 서, 7·8일은 북, 9·10일은 하늘로 같은 배당을 적어서 두 항목의 배당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큰달의 여섯 날과 작은달의 다섯 날
끝자리가 9나 0인 날은 음력 9일과 10일, 19일과 20일, 29일과 30일입니다. 음력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이라 30일이 없는 작은달에는 하루가 빠져 다섯 날이 됩니다. 달마다 달라지는 부분은 양력으로 옮기는 자리입니다. 양력 9일이나 10일이 손 없는 날인 것이 아니라, 그달 음력 9일이 양력 며칠에 놓이는지를 매번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양력 달력의 같은 숫자 칸이 어느 달에는 손 없는 날이고 어느 달에는 아닙니다. 달마다 음력 날짜와 양력 날짜가 어긋나는 정도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사에서 장 담그기까지 손 없는 날에 맡긴 일
‘손 없는 날’ 항목이 꼽는 일은 이사, 집수리, 개업, 혼인 같은 중요한 행사입니다. 항목은 여기에 산소를 돌보거나 묏자리를 고치는 일, 한 해 먹을 장을 담그는 일까지 들고, 정혼 뒤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사주단자를 보낼 때도 일진과 방위를 보아 손 없는 날을 골랐다고 적습니다. 경상북도 칠곡의 한 집에서는 못을 치고 담을 쌓고 지붕을 올리는 날도 손 없는 날로 잡았고, 그래야 뒤탈이 없다고 여겼다는 조사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한식이나 청명을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는 ‘손 없는 날’로 여겨 묘를 손질한 지역, 음력 2월 9일을 무엇을 해도 해가 없는 무방수날로 꼽은 풍속도 이 항목에 있습니다. 경기도 광명에서는 한식을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고 비석이나 상석을 세우고 이장도 했으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한식을 손 없는 날, 해가 없는 날, 공마일(空魔日)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역 조사 사례는 더 다양합니다. 예천의 한 마을에서는 음력 2월에 손 없는 날을 가려 영등할머니에게 빌고, 창원의 한 마을에서는 정월 손 없는 날이나 말날에 장을 담급니다. 영암의 한 집안은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손 없는 날이라 하여 6·25전쟁 때 죽은 집안사람들의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손’ 항목은 오늘날에는 주로 이삿날을 손 없는 날로 잡는 민풍이 따른다고 정리합니다.
무방수날은 해가 없는 정도가 가장 강한 날로 그려집니다.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초여드레까지 이틀씩 동서남북으로 손이 돌아다니다가 초아흐레에야 하늘로 올라가므로, 이날에는 성주단지를 뒤집어 놓아도 탈이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평소 손이 있는 곳을 가려 함부로 치지 못한 못을 치고, 이사나 이장처럼 조심하던 일을 마음 놓고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상의 위치는 조금 의외입니다. ‘손 없는 날’ 항목은 조선시대 관상감이 증보한 『천기대요』가 속칭 손을 태백살이라 하면서 혼례 때 초례상 차리는 방향을 피하는 정도로만 적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17세기 초 한글 편지 『현풍곽씨언간』에는 말을 보내는 날로 ‘손 없고 조용한 날’을 꼽는 대목이 있어, 민간에서 날을 가릴 때 이미 두루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항목은 퍼진 까닭도 추정합니다. 손 없는 날은 순서대로 계속 되풀이되기 때문에 누구나 책력 없이도 쉽게 알 수 있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항목은 사람들이 복잡한 택일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단순화·규칙화해 쓰기 쉽게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짚고, 이 경향이 택일풍속이 민간에서 오래 이어진 원동력이라고 평가합니다.
손 없는 날은 택일에 쓰던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기복덕까지 겹쳐 날을 가리던 방식은 택일을 다루는 글로 이어지고, 날이 아니라 해를 단위로 조심하던 풍속은 띠 묶음별 삼재 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력 달력에서 손 없는 날을 짚는 순서
- 날짜를 음력으로 바꿉니다.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에 양력 날짜를 넣으면 음력 날짜가 나옵니다. 이삿날 후보가 정해져 있다면 후보마다 한 번씩 넣어 봅니다.
- 음력 날짜의 끝자리를 봅니다. 9나 0이면 손 없는 날이고, 1부터 8까지면 앞에서 본 배당에 따라 손이 머무는 방위가 정해집니다.
- 그달이 29일에 끝나는지 30일에 끝나는지 확인합니다. 29일에 끝나는 작은달이라면 그달의 마지막 손 없는 날은 29일입니다.
- 결과를 양력으로 되돌려 적습니다. 예를 들어 2026년 음력 9월은 29일까지인 작은달입니다. 이 변환에서 양력 11월 8일이 음력 9월 29일이고 다음 날 11월 9일이 음력 10월 1일로 나옵니다. 그달의 손 없는 날은 양력 10월 19일, 20일, 29일, 30일과 11월 8일의 다섯 날입니다.
- 이사라면 옮겨 갈 방향도 함께 봅니다. ‘손 없는 날’ 항목의 두 겹 규칙에 따라, 9나 0이 아닌 날을 쓸 때는 지금 사는 곳에서 옮겨 갈 방위에 그날 손이 머무는지 앞의 배당과 맞춰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