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홍범은 오행을 헤아리면서 첫째가 수(水), 둘째가 화(火), 셋째가 목(木), 넷째가 금(金), 다섯째가 토(土)라고 적습니다. 우리가 목화토금수로 외는 차례는 이 번호가 아니라 서로 낳는 차례입니다. 같은 다섯 글자가 문헌에 따라 세 가지 순서로 꿰어진다는 사실이 오행 배속표를 읽는 출발점입니다.
같은 다섯 글자를 꿰는 세 가지 차례
홍범은 아홉 범주(구주) 가운데 첫째로 오행을, 둘째로 오사(貌言視聽思)를 꼽는 글입니다. 첫째 범주에서 오행에 일부터 오까지 번호를 매기고 성질을 한 글자씩 붙입니다. 수는 젖어 아래로 스며드는 성질(윤하), 화는 위로 타오르는 성질(염상), 목은 휘기도 하고 곧게 뻗기도 하는 성질(곡직), 금은 거푸집에 따르는 성질(종혁), 토는 씨를 뿌려 거두는 성질(가색)입니다. 맛도 짝지어 수는 짠맛, 화는 쓴맛, 목은 신맛, 금은 매운맛, 토는 단맛을 냅니다.

상생의 차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오행론 항목에 그대로 있습니다. 목은 화를 낳고, 화는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는 순환입니다. 상극의 원형은 추연이 내세웠다는 오행상승설로 소개되며, 목이 토를 누르고 토가 수를 막고 수가 화를 끄고 화가 금을 녹이고 금이 목을 베는 순환입니다. 이긴다는 말을 극한다로 바꾸면 우리가 아는 상극이 됩니다. 정리하면 홍범은 번호 순으로 수·화·목·금·토, 상생은 낳는 순으로 목·화·토·금·수, 상극은 이기는 순으로 목·토·수·화·금을 꿰는 셈입니다. 이 상극 관계에 일간을 기준으로 열 가지 이름이 붙는 과정은 십성 열 가지가 이름을 얻는 순서에서 이어집니다.
행(行)은 물질이 아니라 움직임의 과정이다
오행의 행이라는 글자는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음양오행설 항목은 오행의 개념을 다섯 종류의 기본 물질이라기보다 다섯 가지 기본 과정을 나타내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영원히 순환운동을 하는 다섯 힘이라고 풀이합니다. 오행론 항목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오행을 목·화·토·금·수의 다섯 원소로 소개하고, 이 다섯이 뽑힌 까닭도 사람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였기 때문이라고 적습니다. 원소로 읽을지 과정으로 읽을지는 자료마다 갈리는 대목이어서, 글자가 움직임을 뜻한다는 점을 들어 여기서는 과정 쪽을 따릅니다.
과정으로 읽으면 상생은 자연의 운동을 양과 음이 번갈아 자라고 줄어드는 다섯 단계로 본 도식이 됩니다. 첫 단계에서는 양이 자라고 둘째 단계에서는 양이 무르익으며, 셋째 단계에서는 양이 줄었으나 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 균형이 잡힙니다. 넷째 단계에서 음이 자라기 시작해 다섯째 단계에 음이 무르익고, 순환은 다시 양의 성장으로 돌아갑니다. 양이 다시 자라기 전의 균형 구간은 도식에서 생략된다고 합니다. 상극을 뜻하는 상승설은 같은 다섯을 개별 힘의 대결로 봅니다. 각 단계가 앞선 단계를 이긴 결과로 나타난다고 보므로 끊임없는 갈등을 그리는 도식입니다.
방위와 계절에 오행을 걸어 놓은 방식
음양오행설은 우주의 사물을 다섯 범주로 나누면서 동서남북을 각각 목·금·화·수에, 중앙을 토에 배정하고 춘하추동을 목·화·금·수에 놓았습니다. 한나라 때에는 이 배당이 계절·방위·색·맛·음(音)으로 넓어졌다고 오행론은 설명합니다. 방위는 다섯인데 계절은 넷이어서 토가 계절 칸을 얻지 못한 것이 눈에 띕니다.
토의 계절 칸은 자료마다 다르게 채워집니다. 음양오행설은 춘하추동에 토를 넣지 않았고,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오방색 항목은 황색을 방위로는 중앙, 계절로는 여름, 오행으로는 토에 둡니다. 명확하게 다섯으로 나뉘지 않는 사물에서는 자의적인 구분과 선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서술도 음양오행설에 있습니다. 배속표의 한 칸이 자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표가 자연에서 관찰한 사실이 아니라 합의한 약속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계절에 따라 오행의 세기를 달리 보는 논의는 용신을 고르는 기준이 문헌마다 갈리는 사정에서 따로 다룹니다.
다섯 칸으로 모은 방위·계절·색·맛
| 오행 | 방위 | 계절 | 색(오방색) | 맛(홍범) |
|---|---|---|---|---|
| 목 | 동 | 봄 | 청 | 신맛 |
| 화 | 남 | 여름 | 적 | 쓴맛 |
| 토 | 중앙 | 자료마다 다름 | 황 | 단맛 |
| 금 | 서 | 가을 | 백 | 매운맛 |
| 수 | 북 | 겨울 | 흑 | 짠맛 |
방위와 계절은 음양오행설, 색은 오방색 항목, 맛은 홍범의 짝을 따랐습니다. 색은 맛에도 걸렸습니다. 오방색 항목은 신 것은 푸르고, 쓴 것은 붉고, 단 것은 노랗고, 매운 것은 희고, 짠 것은 검다고 보았다고 적는데, 홍범이 목에 신맛, 화에 쓴맛, 토에 단맛, 금에 매운맛, 수에 짠맛을 붙인 짝과 그대로 겹칩니다. 진나라 이래 배속은 신체의 기관과 냄새에까지 번졌다고 음양오행설은 설명해서, 표의 칸은 얼마든지 더 늘릴 수 있었습니다.
생활 속에 남은 배속
오방색은 단청과 색동과 깃발에
한국은 오방색을 색의 근본으로 삼아 상서로움의 극치로 여겼고, 그 기운 때문에 잡귀가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믿었다는 것이 오방색 항목의 설명입니다. 조선시대 군대의 깃발, 어린아이의 색동옷, 건축물의 단청에 이 원리가 적용되었고, 금줄에 붉은 고추를 다는 것은 벽사의 뜻이라고 합니다. 입는 옷에도 색의 규칙이 따랐습니다. 정경부인의 옥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는 늙지 않고 늘 젊기를 바라는 불로상청의 뜻이었고, 조선의 국왕은 홍색포를 입다가 대한제국 이후에야 황색포를 입게 되었습니다.
오방색은 다섯 빛깔에 그치지 않고 중간색으로 넓어졌습니다. 색동옷과 녹의홍상의 혼례복, 복주머니 같은 장신구, 오과(五果)와 오신채(五辛菜) 같은 음식, 궁궐과 사찰의 단청, 탈춤 복장과 무속인의 옷까지 일상 곳곳에 번졌다고 오방색 항목은 정리합니다. 저고리 소맷부리에 단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은 여인임을 자랑하는 표지이기도 했습니다.
상극이 생활의 금기로 쓰인 보기도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은 우리나라가 동방, 곧 나무에 해당하는데 흰색은 쇠에 해당하고 쇠는 나무를 이기므로 흰옷이 나라가 망할 징조라 하여 일상에서 흰색 사용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염료를 구하기 어렵고 국상이 잦아 상복을 입을 일이 이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에서 흰옷을 즐겨 입었고, 그 결과 흰색이 우리 민족과 가깝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항목은 고주몽의 흰빛, 박혁거세의 흰말, 김알지의 흰닭, 석탈해의 흰까치처럼 영웅의 탄생 설화에서는 흰색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서기를 뜻했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사신도와 오방신장은 방위가 신이 된 모습
고구려 고분에 청룡·백호·주작·현무가 망자를 둘러싼 네 방위의 수호신으로 그려진 것을 오행론은 삼국시대에 음양오행 사상이 구체화된 증거로 듭니다. 신라 황룡사 9층탑 심초석 아래에서 사신이 양각된 청동거울이 나온 일도 같은 흔적으로 꼽힙니다. 민간에서는 다섯 방위를 지키는 오방신장 신앙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오방신장 항목은 방위와 색과 오행을 동-청-목, 서-백-금, 남-적-화, 북-흑-수, 중앙-황-토로 짝짓고 신장의 이름을 동방청제·서방백제·남방적제·북방흑제·중앙황제라 적습니다. 굿에서 신장이 청·황·흑·백·적 다섯 깃발 가운데 하나를 뽑게 하는 장면과 고성오광대의 오방 양반 배역도 같은 배속이 놀이로 옮겨 간 흔적으로 소개됩니다. 민간에서 출타나 이사 때 일진과 방위를 잡아 택일하는 것도 방위신의 양해를 구하는 속신이고, 농촌에서 방위에 따라 대문을 내는 것도 재화를 피하고 복록을 기원하는 신앙 행위라고 같은 항목은 풀이합니다.
오상이라는 덕목에도 오행이 붙었다
유교의 오상도 배속표에 들어왔습니다. 음양오행설은 인은 목과 동, 의는 금과 서, 예는 화와 남, 지는 수와 북, 신은 토와 중앙에 이어진다고 정리합니다. 오방색 항목은 같은 짝을 색으로 옮겨 인은 청색, 의는 백색, 예는 적색, 지는 흑색, 신은 황색으로 표상했다고 적습니다. 이름 한자에서 오행을 읽는 방식도 이 배속표의 연장선에 있고, 그 갈래와 근거 차이는 이름 한자에 오행을 배당해 온 자원오행의 갈래에 있습니다.
달력과 왕조 교체에 쓰인 오행
오행은 달력에도 들어갔습니다. 음양주운설은 『관자』 사시편과 유관편에 전해지고 『여씨춘추』를 거쳐 『예기』 월령으로 자리 잡았다고 음양오행설은 설명합니다. 월령은 군주가 백성에게 내린 월중행사표로, 매달 그 달에 알맞은 시령을 행하지 않으면 천시에 영향을 주어 괴변이 생긴다고 여겼습니다. 오행은 자연을 설명하는 틀을 넘어 왕조가 바뀌는 까닭을 설명하는 틀로도 쓰였습니다.
진나라가 수덕과 흑색을 고른 까닭
추연이 내세웠다고 전하는 종시오덕설은 오행의 덕이 차례로 이어지며 왕조가 바뀐다는 주장입니다. 황제의 토덕을 하나라의 목덕이 이기고, 하나라의 목덕을 상(은)나라의 금덕이, 상나라의 금덕을 주나라의 화덕이 이기므로 주나라 다음 왕조는 반드시 수덕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받아 진시황이 수의 색인 흑색을 모든 면에서 숭상했다고 대백과는 적습니다. 배속표의 색 칸이 정치 이념의 상징으로 쓰인 보기입니다. 표를 읽을 때는 칸이 비어 있거나 자료마다 다르면 그대로 두는 편이 정직합니다.
이 표가 문헌에서 자리 잡은 차례
음양설과 오행설은 원래 따로 있었고 대략 기원전 4세기 초 전국시대에 결합되기 시작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음양오행설 항목은 적습니다. 추연이 체계적으로 결합했다고 전하지만 입증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한나라에 이르러 두 관점이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된 것은 확실하다는 서술입니다. 오행론 항목은 이보다 단정적이어서 음양오행 사상이 처음 추연에 의해 체계적으로 성립했다고 적습니다. 두 항목의 서술 강도가 다르므로 추연이 정리했다고 전한다는 선까지만 쓰고, 한나라 통합을 확실한 지점으로 삼습니다.

홍범의 위치도 같은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이 문헌은 은나라의 기자가 무왕에게 전한 말로 알려져 왔으나 지금은 여러 시대의 단편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고 음양오행설은 설명합니다. 그러니 홍범의 번호를 가장 오래된 오행 순서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오행론의 서술을 따르면 상극에 해당하는 상승설이 전국시대 말엽부터 퍼져 한나라 초엽에 화북에 널리 알려졌고, 한나라의 기초가 확립되면서 상생설이 새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시기 오행설은 사람이 질서 있게 사는지에 따라 우주의 운행도 영향을 받는다는 천인감응설과 결합했고, 정치와 도덕뿐 아니라 점성·율력·의술·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 서술대로라면 우리가 목화토금수 순서로 먼저 외는 상생은 시기로 보면 상극보다 늦게 자리 잡은 쪽입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고분 벽화와 오부오방제 같은 모습으로 구체화되어 들어왔는데, 오행론은 그때 들어온 것이 이미 참위설과 얽히며 복잡해진 뒤의 음양오행설이었다고 짚습니다.